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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고해

yyjhghgf 2024. 1. 24. 23:20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날이었는데, 그때는 근처 교보문고로 가는 게 나한테 위로였다. 버스로 30분 쯤 가는 그 거리가 맘에 들었고 그 시간 쯤이면 서점에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였기 때문에 꼭 가고 싶었다. 가야만 했다. 이 책 저 책 뒤적거려보다가 잡지코너로 갔다. 어쩌다가 월간 샘터을 집어들게되었다. 사실 나는 좋은생각이라든가 샘터라든가. 그런 잡지를 잘 안 읽는 편이므로 그날 그 잡지를 집어든 건 나도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글들 사이에서 정영 시인의 짧은 글을 읽게 되었고 이제는정영 시인의 시집까지 들게 만들었다. 따뜻한 위로가 되는 글들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펼쳐보게 된다. 마음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든 그런 때에는. 도무지 위로랑 상관이 없는 글을 읽고 있는데도 마음이 잔잔해지고 뭔가 다 괜찮아 질 것 같은. 정영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그렇다.
2000년에 등단한 이래 개성있는 작품을 발표해온 정영 시인의 첫시집. 고통에 가득 찬 삶을 받아들이되 그 비관에 눌리지 않고 세계에 적극 개입하는 목소리를 담은 시 52편을 묶었다. 시인은 세계에 잘못 배달된 나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긍정하고, 죽음을 일상적으로 수용해 삶과 분리시키지 않는 동시에, 신 앞에서는 당당하고 거침없이 고해한다. 절제와 폭로를 적절하게 변주하면서 구축한 완성도 높은 시세계는, 산문화된 문장과 소음을 시로 발언하는 최근 젊은 시단에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또한 사랑과 일상을 잔혹하면서 아름답고, 차가우면서도 뜨겁게 묘사하는 어법은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제1부

열두 시간의 기도
평일의 고해
Dakhla; 입구
찬미들, 안녕
못된 저녁
쥘 라포르그의 약국
검은 주머니 사용법
울적한 개
이해해요
암스테르Dam
먼 나라 푸른 사내의 아내
마음 아픈 낮
생일
저녁
내 눈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
I’m Sunshine―화석
권오준씨
낡은 도시의 사랑
OTEL
뚤루즈로트렉의 집
바람의 가족
자수
가수―오늘은 오늘로 충분해 1
가수―오늘은 오늘로 충분해 2
지구 동물원
쓸쓸한 바닷가
혼자 사는 방


제2부

화대
떠간다
하늘 사과밭
자벌레와 한 자
당신이 사준 그리움
근황
사방연속무늬 당신
사랑의 한낮
거미집
한 사람
깜깜한 식당
고분벽화
구름에 달린 마을
그림 마을
크리스마스 카드
심야 로드무비 상영중
아무리 손 내밀어도 닿지 않는
길 위로 온 편지
내력
엄마가 싸준 떡
어둡고 좁고 가파른
오동나무 상여
종점에 사는 집
병든 길

해설│류신
시인의 말